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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준흠, "인디 신은 제2의 이문세가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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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크지 '대중음악 사운드' 발행한 가슴네트워크 박준흠 대표

[유니온프레스=권석정 인턴기자] 문화기획그룹 가슴네트워크의 박준흠(45) 대표를 5일 오후 4시 홍대앞에서 만났다. 

1997년 음악잡지 《서브》의 기획자로 출발해 편집장을 역임하고 웹진 《가슴》의 대표를 거쳐 '광명음악밸리축제' 예술감독, '펜타포트 페스티벌' 총감독을 거친 박준흠 대표. 10년을 훌쩍 넘는 세월동안 한국대중음악관련 저술 및 축제 분야의 제일선에서 활동해온 그가 이번에는 무크지 《대중음악 사운드》를 내놨다.

음악잡지를 만들던 사람에서 축제기획자로 변신했던 그는 이후에도 대중음악관련서적을 여러 권 펴냈다. 잡지, 웹진, 단행본 등 온갖 매체에 손을 댔던 그가 이번에는 잡지와 단행본의 중간단계인 무크지를 발행했다. 왜일까? <워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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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 에세이 <행운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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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기다려주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에세이 <행운가> 가 출간되었습니다.
달빛요정의 책이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출판사인 북하우스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습니다. 
달빛요정의 친필싸인과 2.5집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고 쓴 친필을 책에 넣어주셨습니다.

책은 달빛요정의 홈페이지(앨범구입 게시판)와 온라인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가격은 12.420 원 동일합니다. 무료배송.
온라인 서점의 경우 적립금 등의 혜택이 있으니 마음에 드시는 곳에서 구입하시면 됩니다.

저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ㅣ 출판사 : 북하우스 ㅣ 발행일 : 2011년 01월20일

 

<출판사 서평>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그가 팬들을 위해 직접 준비해두었던 마지막 에세이 선물
[절룩거리네] [스끼다시 내 인생] 등으로 유명한 인디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에세이집. 2010년 11월,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출간을 위해 2년 동안 직접 준비한 원고들을 모았다. 홍대앞 인디뮤지션의 꿈과 현실, 발표한 노래들 뒤에 숨겨진 수많은 사연들, 사회에 대한 통쾌하고 전복적인 시선 등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으로 살았던 뮤지션 이진원의 거의 모든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미 직접 쓴 가사들로 인정받은 그의 글맛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읽는 내내 재미와 웃음을 주지만, 그 속에 묻어나는 어느 뮤지션의 짧지만 열정 가득했던 생애는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꿈이 꿈대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찬란히 빛났으면 좋겠다. 어디에서든.”
달빛요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 책은 ‘미완의 유고집’이 되고 말았지만, 여기에 실린 글들은 모두 출간을 목적으로 그가 직접 집필한 것이다. 책도 자신의 독립적인 창작물이 되기를 바란 만큼 음악으로 못다 한 이야기를 책을 통해서 풀어내고 싶어한 그의 진정성이 이 책에 스며 있다. 
‘1부 사전’은 달빛요정이 달빛요정을 스스로 소개하는 글로서, 그가 직접 자신과 관련된 키워드(야구, 박찬호, 라면, 술, 인디뮤지션 등)를 고르고 사전 형식의 해설을 붙였다. 그 속에서 자신을 ‘가내 수공업 뮤지션’이라 정의하면서도 ‘음악만으로 살기로’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제작후기라고 할 수 있는 ‘2부 노래’에서는 그의 앨범에 수록된 거의 모든 노래들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논란이 되었던 노래 [도토리]에 숨겨놓았던 본뜻도 속 시원히 밝히고 있다. 창작자로서 하루하루 부딪히는 현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3부 일기’는 홍대앞 인디뮤지션의 일상을 세밀하게 스케치한 것이다. 음악/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만 인터뷰하는 자타공인 ‘루저’ 뮤지션의 비애부터 자신의 공연 포스터를 붙여줄 사람을 직접 수소문해야 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까지 대담하고 솔직하게 밝히는 저자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
글 세 편이 전부인 ‘4부 생각’은 ‘프롤로그’처럼 끝내 완성되지 못한 부분이다. 그래도 사회의 불의에는 분노하지만, 유쾌하고 따뜻하게 세상을 끌어안으려는 달빛요정에 공감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달빛요정의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의 깊이 있는 글과, 모든 앨범에 수록된 전곡의 노랫말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또한 책 맨 앞뒤의 intro/outro는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그의 어릴 적 사진과 대학 시절 사진, 최근의 공연 사진 등으로 구성되어, 너무도 이른 그의 죽음이 못내 안타까운 독자와 팬들의 마음에 진한 여운을 남긴다.

 

<목차>

끝맺지 못한 프롤로그 

1부 사전: 요정의 사고 인간의 언어
달빛요정 / 야구 / LG 트윈스 / 야구만화 / 박찬호 / 서태지 / X세대 / 주성치 / 술 / 라면 / 노래방 / 마초 / 기타 / 음반 / 음악 / 인디뮤지션

2부 노래: 불행을 팝니다
Infield Fly / Sophomore Jinx / Scoring Position / Single Hit #1 / Goodbye Aluminium / 전투형 달빛요정 PROTOTYPE A

3부 일기: 성공한 루저의 초라한 침실 2009. 1. 13.~ 2009. 5. 23.

4부 생각: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연아 올림픽 금메달! / 다큐멘터리 음악을 하기로 했다 / We rule

(평문) 직구 같은 노래로 세상을 그리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음악을 생각하며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부록: 노랫말 모음

 

<저자 소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저]

뮤지션,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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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마켓은 홍대앞 ‘낮의 문화’를 일궜다고 자부”[경향신문/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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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윤민용·사진 김세구 선임기자

ㆍ사무국 역할 ‘일상예술창작센터’ 김영등 대표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 무렵부터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기 전까지 서울 홍대앞 놀이터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장터가 열린다. 바로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이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르지 않고 열린 프리마켓이 지난 5일로 9주년을 맞았다.

프리마켓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홍대앞의 문화예술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홍대신촌문화포럼이 ‘문화예술지구 홍대앞’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교류의 장을 만들기 위해 계획한 것이다. 잠깐의 이벤트로 끝날 뻔했던 프리마켓을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운영한 이가 바로 현재 프리마켓 사무국 역할을 하는 일상예술창작센터의 김영등 대표(42)다.

현재 일상예술창작센터에는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젊은 상근활동가 15명이 프리마켓과 마포희망시장의 운영 및 문화예술강좌와 전시를 겸하는 생활창작공간 ‘새끼’의 운영과 관리를 도맡고 있다.

최근 김 대표를 비롯해 일상예술창작센터에는 겹경사가 생겼다.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이 개설된 지 9주년을 맞은 것에 더해, 지난달말 일상예술창작센터가 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것이다. 참여작가들과 상근활동가들의 노력으로 지속된 프리마켓의 공로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김 대표는 “처음 프리마켓을 시작할 때는 홍대앞 놀이터 공간을 활성화해서 문화공간으로 만들려는 목적이 컸는데 놀이터가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나는 데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고 자평했다. “예전에는 홍대앞이 클럽으로 대표되는 밤문화가 활발한 공간이었다면, 프리마켓은 낮의 홍대앞 문화를 일구는 데 기여했고 봄부터 가을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열다보니 홍대앞을 좀 더 문화예술, 관광의 측면에서 각인시키고 활성화하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작업을 하는 이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문화공간의 장이 되었고, 그런 활동을 하는 이들이 계속 홍대앞에 모이게 하는 역할을 했죠.”

그는 ‘사회적 기업 인증’이라는 타이틀을 “기회이자 위기”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반적인 문화예술단체들이 자력으로 생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지원제도를 활용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보자는 취지에서 사회적 기업 신청을 했어요. 막상 인증을 받고보니 그간 열심히 활동했다는 것을 인정받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어떤 단계에 올라선 성과라고 평가하기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본래 기업의 생리를 가지지 않은 단체에서 수익창출과 인력고용,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홍대앞의 오랜 터줏대감인 그는 프리마켓 창설에 앞서, 다양한 문화축제기획자로 활동했다. 또 다양한 인디밴드가 무대에 서는 ‘클럽 빵’을 13년째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세월, 홍대앞을 지켜본 그는 그간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과거에 비해 홍대앞의 권역이 넓어지고 새로운 공간, 흐름이 생겨나면서 예전의 ‘동네’ 분위기는 옅어지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홍대앞을 규정할 수 있는 ‘문화예술활동’이라는 힘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시간이 흐르며 홍대앞은 변화했는데, 앞으로 어떤 것들이 지속적으로 남아 분위기를 이어가면 좋을까.’ 20대말 시작됐던 그의 고민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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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 즐겁게 노래하며 싸운다”(레디앙/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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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유채림] 홍대 앞 작은 해방구…철거민과 인디밴드

‘두리반’은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칼국수집이다. 그런데 칼국수를 팔지는 않는다.

 김영삼 시절 청와대에 칼국수를 배달하던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데, 동교동 167번지 두리반에는 칼국수 먹자는 손님이 아니라 인디밴드들과 문인들과 ‘데모꾼’들로 북적댄다.

철거된 가게에 서로 품앗이하는 철거민들뿐 아니라 시인과 소설가와 록밴드들이 제 집 삼아 드나드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24일 낮, 두리반 주인의 남편인 유채림 씨를 찾아 들어선 두리반의 모습은 여느 철거 싸움터와는 많이 달랐다. 붉은 페인트로 휘갈겨놓은 구호보다는 꽃 그림이 더 많았고, 건물 곳곳에서 부딪히는 지원자와 방문객들의 면면도 젊고 밝아 보였다. 

두리반이 처음 철거당할 때까지의 과정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철거 이야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보수정당의 자치단체장이 재개발을 허가해주고, 재벌 돈을 등에 업은 개발업자가 뛰어들고, 지주들은 떼돈을 챙기고, 용역깡패들이 난동을 부리고, 세입자들은 협박과 회유에 뿔뿔이 흩어지고…. 

보증금까지 떼이고 쫓겨나다 

“2006년 3월에 마포구청장이 이곳을 지구단위계획지역으로 발표했는데, 당시에 이곳 상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08년 2월에 명도소송장을 받았고, 그 전까지는 ‘이 동네가 개발되는 모양이다’ 정도로만 생각했지 아무도 자신들의 가게가 그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2007년 늦가을쯤에 근처 건물들이 팔린다는 소식이 있어 두리반 건물도 그렇게 되는 건지 집주인에게 물었더니,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펄쩍 뛰더라고요. 하지만 불과 3개월 후에 명도소송장이 왔으니, 이미 당시에 거의 물밑 거래가 끝났다는 얘기죠. 저희가 장사를 시작한 2005년쯤에는 평당 800만 원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이번 거래가격은 평당 8,000만 원에 육박하니까, 열 배 장사를 한 거죠. 

개발업자는 건물을 매입하자마자 라틴댄스클럽이 있던 4층 건물 유리창을 다 깨고, ‘위험’, ‘철거’라는 락커칠을 하고 누더기 천으로 건물을 감쌌어요. 그러니 영업이 될 리가 없는 거죠. 영업을 할 수 없게 되니 이발소, 꽃가게 등이 차차 떨어져 나갔고요, 두리반은 작년 12월 24일에 용역들이 들이닥쳐 집기를 다 들고 가버렸어요.” 

애초, 세입자들의 요구는 말 그대로 소박했다. 세입자들이 개발업자에게 보낸 공문은 이렇게 말한다. “저희 세입자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저희 세입자는 귀사의 보상으로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인근에 점포를 얻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뿐입니다.” GS건설 상무 출신이 만들고 GS건설이 돈까지 대준 시행사는 이런 요구를 묵살했다. 

다시 당선된 사업 결정 구청장

   
 ▲ 두리반 주인의 남편인 소설가 유채림 씨

도시환경정비사업법에 의한 영업권과 시설투자 보상 의무가 없는 지구단위계획이었고, 개발업자는 이사비용 몇 십만 원이나 몇 백만 원을 제안했다. 두리반 근처의 11세대 세입자들은 맞소송을 했고, 패소했고, 항소했고, 다시 패소했다. 권리금과 시설투자비용이 다 날라갔고, 법원은 재판비용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말라는 판결까지 내렸다. 

“이게 마포구청장이 인허가해준 거잖아요. 이번 선거에서 구청장이 민주당으로 바뀌었는데, 어떤 개전의 가능성이 있을까요?”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가능성이 많지 않아요. 개발이익 일부를 구청이 가져가는 데 현혹돼서 건설업자만 배불리는 사업을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죠.

이번에 당선되신 분이 지난 2월에 여기에 와서, 이전 자기 임기 때 자신이 이 사업을 결정해서 피해자가 발생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속으로는 ‘패가망신 시켜놓고 사과 한 마디로 될 일인가’ 생각 들었지만, 웃고 말았죠.” 

“지금 민주당 당선자가 예전에 구청장이었고 그 사람이 이 사업을 결정한 거네요. 그러면 민주당이 결정하고 한나라당이 집행한 거네요?” 

“아뇨, 지금 민주당 당선자가 예전에는 한나라당 구청장이었어요. 한나라당 재공천을 못 받고 4년 쉬었다가 이번에는 민주당으로 공천받아서 당선된 거죠.” 

용산 사태가 한명숙 국무총리와 오세훈 시장의 합작품이듯이 보수양당 체제 아래에서 두리반들이 기댈 수 있는 정치적 후원자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각설하고. 철거된 두리반에 모인 사람들은 예전의 철거반대투쟁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용산 투쟁을 거치며 발전해온 운동의 성과 덕분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두리반 주인의 남편이 작가회의 회원이라거나 그곳이 홍대 앞이라는 우연의 결과물이기도 한 듯하다. 

밝고 아름다운 농성, 62개의 밴드

   
  ▲ 함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는 지원자와 방문객들

“우리가 다양한 공연을 시작한 건 2월부터였어요. 영화 상영, 음악 공연을 했죠. 3월 말 경에 젊은 밴드들이 5월 1일에 큰 행사를 열자는 제안을 하더라고요. 사실은 5월 1일까지 두리반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좋다, 같이 해보자 했죠. 

5월 1일 공연에 3,000명이 모였어요. 처음에는 51개 밴드를 기획했는데, 밴드가 너무 많이 몰려와서 62개 밴드에서 자를 수밖에 없었어요. 그 밴드들 공연할 장소가 필요해서 그 때부터 두리반 건물 전체를 다 점거하고 썼지요. 

처음에 두리반을 지켜준 건 한국작가회의 분들이었고요, 나중에 두리반을 지켜준 건 홍대 앞 자립음악가들이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하면서 두리반이 사회에 널리 알려지고, 용역들이 폭력을 함부로 행사할 수 없게 된 거죠.” 

“예전의 철거 싸움하고는 많이 다른 거 같아요.” 

“두리반이 이런 시도의 처음은 아니예요. 용산이 문화운동 형식을 띤 첫 싸움이었죠. 그런데 워낙 희생자가 많은 참사 현장이라 즐겁게 웃고 노래할 수 없으니, 문화운동이 빛을 보지 못했죠. 반면 두리반은 웃고 노래하면 저절로 퍼져나갈 수 있는 공간이죠.”  

   
  ▲담벼락 응원 낙서들. 

요즘 두리반에서는 거의 매일 문화행사가 열린다. 철거반대투쟁의 현장이며 동시에 지역의 문화운동 거점이기도 한 것이다. 두리반 부부와 젊은 예술가들의 작은 해방구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서럽기만 한 철거민들의 마음에 아름다움을 불어넣어 주고 소비와 향락으로만 치부되곤 하는 홍대 앞의 음악가들에게 생생한 사회 참여의 통로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두리반은 이미 승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노래는 울려퍼진다

“전에는 출판사 일을 했어요. 본업은 소설이라고 말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니 항상 무언가 다른 일을 하면서 짬짬이 소설을 썼죠.

하지만 철거 싸움을 하면서 그나마 직장도 다닐 수 없게 됐고요. 그런 의미에서 두리반은 우리 가족에게 더없이 소중한 곳이죠. 여기가 무너진 순간 소설적 생명도 끝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영업을 재개해야만 다시 소설을 쓸 수 있죠.

   
  ▲두리반 주인인 안종려 씨와 남편 유채림 씨

철거 싸움처럼 처참한 싸움이 없어요. 그걸 새로운 형태의 싸움으로 만들고 싶어서 많이 고민했죠. 정직하게 농성하고 찾아오시는 분들 따뜻하게 맞이해왔고요.

앞으로도 특별한 계획이 따로 있는 건 아니예요. 철거농성장이라는 게 하루 아침에 와르륵 무너질 수도 있고, 하루 아침에 협상이 끝날 수도 있죠.

어쨌든 임대차보호법이나 도시정비법은 건설업자나 투기꾼들, 부자들이 세입자들에게 휘두르는 폭력이거든요. 이런 법 자체를 인정할 수가 없어요.

그거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라도 끝까지 싸워야죠. 천막이라도 치고 끝까지 버텨야죠. 이 상황에서 뭘 못하겠어요. 

앞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 도시환경정비사업법을 개정하자는 서명운동을 할 거거든요. 레디앙 독자 분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시면 570만 자영업자들에게 그보다 큰 선물은 없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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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을 왜 지켜야 하나요? 성미산이 뭔가요? 그 답이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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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을 지켜주세요!

 

마포 유일의 자연숲 성미산

 

성미산은 북한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생태축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2001년 생태보전시민모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미산 지역 대부분이 서울시가 구분한 비오톱(생명체들의 서식공간, biotop) 등급 중 “대상지 전체지역에 대하여 자연보호가치가 있는” 1등급에 해당됩니다. 뿐만 아니라 동 연구에서 성미산에 서울시가 지정․고시한 보호종 가운데 오색딱다구리를 비롯해 박새, 꾀꼬리, 족제비 등 4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2009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보존대상지 시민공모에서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 - 이곳만은 꼭 지키자”로 산림청장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3분이 1이 잘려나기 일보직전인 성미산

 

마포구 유일의 자연숲 성미산이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홍익재단이 성미산에 홍익 초중고를 이전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환경이 우리 삶의 절대 절명의 가치가 된 지금, 그것도 환경도시를 주창하는 서울시에서 산을 깍아서 학교를 짓는 행태는 적절치 않다는 상식을 뒤엎고 마포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서울시교육청은 홍익초중고의 학교 이전 건축을 허가했습니다.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요.

 

① 마포구청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에 이 땅을 학교부지로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②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 의회 시정 질의에서 주민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만일 협의가 여의치 않을 때는 대체부지 마련도 고민하겠다는 의사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차례의 간단한 소개모임을 하고 난 뒤, 충분히 협의했으니 허가를 하겠다고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마포구청이 성미산대책위에 보낸 공문의 제목은 <대화의 장 참석요청>이었으며, 실제 만남도 상견례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협의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③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기습적으로 안건을 상정, 심의하여 홍익학원의 학교 이전을 승인했습니다.

④ 서울시교육청은 테니스장만한 운동장을 가진 학교를 인가한데 이어 안 그래도 비좁은 성서초등학교 학생들의 진입로에 홍익초중고의 스쿨버스까지 다닐 수 있도록 허가하여 사학재단의 이익을 위해 공립학교 학생들의 안전한 등굣길을 외면함으로서 아이들의 건강권과 행복권을 저버렸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홍익재단의 말만 믿고 실사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⑤ 홍익재단은 금싸라기 땅인 홍대 내부의 초중고를 자연숲 성미산에 옮겨 막대한 차익을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홍대가 현재 학교를 지으려는 땅은 한양재단과 홍익재단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제 3자 사이의 단 3개월간의 거래 과정에서 무려 170억원의 시세차익이 발생되어서 현재 검찰이 조사 중입니다.

 

 

성서초등학교 학생들의 안전권 심각하게 위협

 

홍익초중고가 들어오려고 하는 땅 바로 옆에는 성서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에서는 홍익학원의 학교 건축계획안을 검토 후 학생들의 통학로 안전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 지난 2월 말에 성서초등학교 비상대책위를 꾸려 활동해왔습니다. 이러한 성서초교 학부모들의 반대와 마포구청의 재협의 요구로 서울시교육청 홍익학원에 건축계획안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홍익학원은 건축계획안 수정 제출하였으나, 성서초등학교 비상대책위는 홍익학원 수정안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자전거도로, 인도에 여전히 두 개의 차량 출입구가 생기는 것은 학생들의 안전에 위협을 준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러한 학부모들의 반대요구에도 불구하고 5월 20일 홍익학원 학교사업 실시계획인가를 내린 것입니다. 성서초등학교 비상대책위는 아이들의 통학권,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을 가볍게 여기는 교육청의 처사와 학교와 신축될 현장을 한 번도 찾아와보지도 않은 채 허가를 내주는 탁상행정을 규탄하고 있습니다.



성미산 지키기에 대한 Q&A

Q. 성미산에는 이미 성서초등학교도 있는데, 성미산을 끼고 있는 집도 있고, 베드민턴장도 있는데, 왜 홍익초중고교가 들어오는 것은 반대하는 것인가요?

A. 홍익 초중고등학교가 들어오면 성미산의 삼분의 일을 갈아엎게 됩니다. 우리에게 환경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 우리는 싼 땅인 산에 학교를 많이 지었고, 집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녹지를 훼손해버려서 서울에는 이제 녹색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생태, 환경의 가치를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시기에, 과거 지어진 이런저런 시설들이 있었으니 그와 비슷한 시설들은 더 생겨도 괜찮다는 주장은 적절치 않습니다.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한봉호 교수는 공원으로 속해있지 않으면서 연접해있는 산지들을 이런 식으로 개발하기 시작한다면 서울의 산지형 공원은 거의 다 개발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성미산은 가뜩이나 자연녹지가 부족한 마포구, 서울에서 주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생태공간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에 따라 이산화탄소 흡수원으로서의 숲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성미산의 보전가치는 향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엇보다 숲은 지역 주민, 나아가 지구 대기 전체에 산소를 공급하는 폐의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숲을 파괴하며 건물을 짓는 것은 마포구 지역주민들에게 상징적인 폐암 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Q. 지역민들에게 성미산은 어떤 산인가요?

A. 성미산은 산이라고 하기에 조금 민망할 정도로 야트막한 곳이지만, 성미산은 높고 멀리 있어서 바라보기만 하는 산이 아닙니다. 어르신들의 휴식처이고, 주부들의 산책로이며, 어린이집 아이들의 놀이터이고, 주변 학교의 생태 학습장입니다. 한마디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산이 아니라, 주민의 삶의 공간이며 생활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성미산 일대 주민들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배수지와 아파트공사를 막기 위해 싸웠고, 지금까지도 산을 더욱 잘 가꾸기 위해서 노력해왔던 것입니다.

 

Q. 그래도 다른 것도 아니고 학교를 짓겠다는 것인데, 게다가 홍익초중고는 학교 건물이 부족해서 많이 힘들다고도 하던데, 학교는 지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A. 성미산 아래에는 이미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습니다. 성미산에서 불과 300M 거리에 경성중고교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지역에 학교가 없거나 교실이 과밀해서 홍익초중고를 이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홍익재단이 금싸라기 땅인 홍대 내부에 있는 홍익초중고를 이전시킨 뒤, 땅을 개발해 막대한 수익을 남기기 위해 이전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홍익초중고가 비좁아서 학교를 옮겨야한다면 서울시에서 다른 대체부지를 찾아서 이전하게 중재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기왕 이전 신축하는 홍익초중고는 학교가 부족하거나 교실이 과밀해 고생하는 지역을 찾아서 지역에서도 환영받으면서 이전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학교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홍익초중고가 성미산 아니면 학교를 옮길 곳이 없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마포의 허파라고 할 수 있는 자연숲을 훼손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이며 부도덕한 행위입니다.

 

Q. 마포구청은 이미 성미산의 생태공원화를 약속했는데, 홍익초중고가 들어와도 나머지 공간을 생태공원으로 잘 가꾸면 성미산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A. 생태 환경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간적 구성이 필요합니다. 도심의 아주 작은 산인 성미산의 삼분지 일을 들어내면 그것은 생태공원으로서 가치를 잃습니다. 기존에 있는 것도 열심히 가꾸고 지켜야 겨우 유지되고 있는 산의 삼분지 일을 들어내놓고, 생태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은 말장난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지금 남아있는 성미산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생태적 가치뿐 아니라, 서울시의 환경적 가치, 경제적 가치, 그리고 서울시민의 생존권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Q. 명문사학을 유치해서 성산동 일대 상권이 발전하는 등 지역이 발전할 수 있으며, 집값 땅값도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던데요.

A. 홍익초중고가 명문학교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습니다. 다만 초중고등학교가 들어온다고 지역상권이 살아난다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많습니다. 사립학교인 홍익초등학교는 거의 모든 학생이 이 지역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가용 또는 스쿨버스 등하교만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중고등학교도 지역경제 발전에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반면 ‘좋은 산’ 하나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지역의 가치를 매우 높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보기에는 학교가 들어오면 가시적인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 같이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성미산을 잘 보존하는 것이 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요구

우리는 마포의 유일한 자연숲 성미산 전체가 자연 그대로 지켜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마포의 유일한 자연숲 성미산 전체가 생태공원으로 우리 후대까지 남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마포의 유일한 자연숲 성미산을 파괴하는 홍익재단의 홍익초중고 이전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성서초등학교 아이들이 안전한 등굣길을 보장받아 그들의 건강권과 행복권이 지켜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서울시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학교가 필요한 지역의 대체부지를 찾아 홍익초중고가 이전할 수 있도록 중재할 것을 원합니다.



우리의 행동

우리는 위의 요구를 표현하기 위해서 아래와 같은 행동을 합니다.

 

- 매일 아침 8시반 홍대 앞 <일인시위>

- 매일 저녁 8시 망원우체국 앞 <작은촛불문화제>와 <촛불산책>

- 5월 27일 수요일 2시30분 홍대 놀이터 앞 <성서초등학생 안전권 보장을 위한 가두시위>

- 5월 28일 금요일 4시 홍대 앞 <성미산을 지키기 위해 인디밴드와 함께하는 촛불문화제>

- 이밖에 성미산을 지키자는 메시지가 담긴 옷을 함께 입고 거리를 산책하고, 이러한 메시지의 현수막을 각 가정의 베란다에 내걸고, 성미산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시작합니다.

* 우리의 비상행동 모습 사진과 내용 등은 http://blog.naver.com/supsubi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을 요청드립니다.

성미산 주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까지 마포의 유일한 자연숲 성미산을 지키고 가꾸어 왔습니다. 우리는 성미산이 우리들만의 산이라던가 우리에게 특별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작고 아름다운 도심의 자연숲을 우리 자식들과 성미산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 후대에서까지 물려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자연과 녹색을 강조하며 그것을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말을 일삼아 왔지만 도심의 작은 자연숲, 마포의 유일한 자연숲 성미산마저 온전히 지킬 수 없는 현실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킬 것입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포기와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마포의 유일한 자연숲 성미산을 지켜왔듯 오늘도 우리는 아름다운 성미산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힘을 보태주십시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이 푸르고 아름다운 작은 산을 지켜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십시오.


<출처:성미산마을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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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고생이많다-2009.11.7 홍대앞 롤링홀 공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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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소개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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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신-배띄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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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그 노래...
발기인 대회때 불렀던 대금 부르는 국악가수, 여자 장사익 전명신 님의 배띄워라입니다.
아싸~~
전명신 님한테 허락받고 올린 거니까 근심없이 감상하시고 알려주세요.


*사진은 아래 게시판에서 펐습니다.

아래는 가삽니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아이야 벗님네야 어서 가자 배 띄워라

동서남북 바람 불 제 언제나 기다리나

술 익고 달이 뜨니 이 때가 아니더냐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아이야 벗님네야 배 띄워서 어서 가자

바람이 없으면 노를 젓고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자

강 건너 벗님네들 앉아서 기다리랴

그리워 서럽다고 울기만 하랴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아이야 벗님네야 배 띄워서 어서 가자

바람이 없으면 노를 젓고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자

강 건너 벗님네들 앉아서 기다리랴

그리워 서럽다고 울기만 하랴 배 띄워라 배 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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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예술 전문 무크지-실험예술정신-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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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7월에 발간되었네요. 늦었지만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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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와의 일상적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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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

  ‘시각 디자이너이자 홍익대학교 미대 교수‘ 라는 직함보다도 그가 고안한 글꼴인 ’안상수체‘ 로 더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안상수 교수의 작업실은 꽤 넓었다. 인터뷰를 위해 들어선 작업실 바닥에는 ’화和’ 라는 글자가 가득했다. 인터뷰에 대해서는 이미 사전 인터뷰와 질문지 정리가 있었으나, 이런 ‘공식적인’ 인터뷰는 이미 수없이 해 온 터일 안상수 교수의 인터뷰론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냥 사는 이야기나 좀 하는 거지 뭐.” 라는, 어찌 보면 인터뷰로서는 참 불안한 형태로 인터뷰는 흘러간다.
책상위에도 바닥에도 여기저기 놓여있는 ‘和’ 가 쓰인 화선지들을 치우며 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안> 인터뷰라는게 참 그렇더라고. 2002년이던가, KBS에서 디지털 미술관인가 하는 프로에 한 회분 한다고 해서 조건을 달았어. ‘좋다. 다 찍어라. 대신 절대 귀찮게 하지 말아라.’ 하고. 그랬더니만 일주일을 카메라가 딱 붙어서 따라 다니더라고. (웃음) 거참, 결국은 2회 분량으로 편집해서 나갔던데. 또 한번은 MBC에서 취재를 나왔는데 마침 그 때 금누리 선생하고 같이 있었단 말이야. 화면 저 뒤쪽에다가 금누리 선생을 배경으로 놓고 찍었지.

m> 그냥 배경으로요?
안> 그렇지. 그냥 배경으로. 그랬더니 PD가 왜 그러시느냐고 물어보더라고. 아 얼마나 좋아. 금누리 선생. 배경으로도 강렬하고. 그런데 잘 이해를 못 하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생각해 보는 건데, 인터뷰를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좀 자유를 주는 방법. 그러니까 인터뷰라는게 나름 언론이라고 그 힘을 백그라운드에 깔고 이야기하는 거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아. 언론 파워라는게 있으니까 그 힘을 가지고 하는 거지. 인터뷰는 상호작용이 되어야 되는 건데. 그런 방향성을 잡는 게 참 어렵나 봐.
그냥 사는 이야기’ 로 인터뷰 방향은 정해졌다. 사실, 검색엔진에 키워드로 ‘안상수’ 세 글자로 받아낼 수 있는 정보는 얼마나 많겠는가.
m> 화(和) 가 많네요.
안> 아. 이게… 전에 중국에 갔을 때, 중국에 있는 미술대학에서 1년간 방도 주고, 강사료도 주고, 조교도 붙여주고 그랬거든. 그런데 그 조교로 있던 사람이 젊은 부부였어. 1년 만에 다시 중국에 가서 그 부부랑 같이 저녁을 했는데, 아이 이름을 지어 달라는 거야. 그 부부가 첫 번째 애를 유산하고 두 번째로 애를 가진 거라서. 아, 그게 좋더라고. 내가 그런 걸 해도 될까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좋더라고.
m> 대부가 되시는 거네요.
안> 그래서 이름을 정하는데… 화(和) 가 좋아. 함께. 중국어 발음으로는 ‘허’ 라고 하는데, 화이부동(和而不同 : 화합하기 위해서는 달라야 한다) 에서 따온 거야. 뭐 단어 하나에 뜻 하나니까, 결국 좋아하는 뜻을 고르게 되는데. 영어로는 Harmony.
같은 식으로 모여 있는 건 신영복 선생님 식으로 말하면 아첨이지. 다 똑같은 게 모여 있으면 어떻게 나랑 다른 걸 구별하나. 잘 사는 건 결국 자기 성질과 긴장을 유지하면서 같이 있는 거다 싶은 거지. 그래서 정해진 이름이에요. 같지 않은 사람들이 공존해서 잘 지내는 게 평화지. 그런 의미들이 들어있는 단어야. 이 화(和)가.
중국 이름은 성하고 돌림자가 정해져 있어서 한 자만 정하면 되거든. 그래서 그거 보내려고 이렇게 화를 잔뜩 쓴 거야. 쓴 것 중에 세 장을 골라서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그 중에서 하나 딱 눈에 띄길래 골라서 그 아래에다가 이만저만해서 이 글자로 정했다 써주고 인장 찍어서 보냈지. 어제 보냈어.
m> 이름 처음 지어 주신 거죠?
안> 처음이지.
m> 그럼… 주례도 서 보신 적이 없으시죠?
안> 없지. (웃음)
m> 기분이 어떠세요?
안> 생명에게 이름을 주는 거잖아. 이름이 없으면 떠올리거나 생각할 때 참 어려워지는 거니까. 이름을 준다는 건 결국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게 되는 거고. 막상 해 보니까 또 자못 숙연해지기도 하고.
그런 느낌도 있어. 옛날 중국 이야기인데, 어떤 장수가 전쟁에 나갔는데 그 부하 중 하나가 등창이 난 거야. 졸병이 등창이 났는데 그 장수가 자기 입으로 그 고름을 빨아줬다는 거야.
고향에 있던 그 졸병의 부모가 그 소식을 듣고는, 통곡을 하더래. 저 장수가 우리 아들 죽이는구나 하고.

안상수는 대학에서 학교 신문 편집을 하면서 처음으로 한글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한글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 한글은 안상수에게 있어 도구가 되었다.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한글을 그 물物로 파악한다’ 라는 말을 했는데, 한글로 문학을, 패션을,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한글은 그에게 연구과제이며 동시에 영감을 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m> 안상수 선생님은 필기도구로 붓펜을 사용하시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안> 손에 무리가 안 가는 게 붓이어서. 다른 건, 이런 볼펜은 딱딱하잖아. 딱딱한 걸 마찰시켜서 쓰려니까 힘이 들고, 손에 무리가 가지.
m> 게다가 노트는 작은 걸 쓰시는데…
안> 일수노트. (웃음) 이걸 파는 데가 있어서, 가끔 가서 왕창 사다 놓고 써.
m> 안 그래도 노트도 작은데, 붓펜으로 쓰시면 한 장에 들어갈 수 있는 글자수가 작아지잖아요. 선생님의 작업인 글꼴들 역시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이 있거든요. 공간적으로 자리를 넓게 차지한다는 느낌이랄까…. 한 마디로 하자면 ‘단위 면적당 정보량이 적다’ 랄까요.
안> 단위 면적당 정보량이 작다? 재미있네. (웃음) 음, 안 그래도 너무 집약적인 게 많다고 봐요. 글자도 말도 다 너무 빽빽하게 모으고. 붓은 낭창낭창하다고 할까. 히바리가 없다고 할까. 자체에 힘이 있는 도구가 아니야. 펜이나 볼펜은 자체에 힘이 있는 도구지. 단단하고, 강하고. 그 대신 붓은 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그건 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거니까. 나도 어릴 때는 연필 쓰다가, 우리 때는 국민학교 들어가면 잉크를 썼다고.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붓에 맛을 들였지. 게다가 편해. 밥 먹다가 냅킨에다가도 아무 말이나 써도 되고. 볼펜으로 이런 걸 어떻게 하느냐고.
그런데 요즘은 또 연필이 좋아져요. 너무 딱딱하지 않은 걸로, 대신 너무 연해도 안되고. 그래서 B나 2B 정도가 좋아.
단위당 정보량 보다는 그 속에 어떤 아우라가 들어있는가가 중요해. 나는 가끔은 공책 말고 아무데나 글을 쓰는데, 특히 다른 책이나 잡지 위에다가 글을 쓰고 나면, 내가 쓴 글자 사이에 있는 글자들이 굉장히 강렬하게 튀어 나올 때가 있어. 그 느낌이 좋아서 붓을 쓰기도 하고. 요즘 붓펜들은 잉크도 카트리지로 갈아 쓸 수 있고 해서 편해.

안상수의 작업은 기존에 있는 ‘한글’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그가 가장 존경한다는 세종대왕이 만들어 낸 도구를 안상수는 붓을 사용하듯 힘을 주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자신의 표현으로 만든다. 그런 그의 디자인에서는 휴머니즘, 평화, 생명(命), 정체성, 디자인, 인생 그 자체가 나온다고 단언한다.
안> 아까 프린터가 고장나서 아침에 용산에 AS 맡기러 다녀왔는데, 길에 노숙자를 위한 긊식 줄이 주우욱 늘어섰더라고. 그런데 운전하면서 보다 보니 많이는 못 봤지만, 사람들이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거야. 줄 서서는. 선진국의 거지들은 자존심도 있고, 몇 시 넘어가면 영업시간 끝났다고 돈도 안 받는다는데. 자기가 자기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게 없어지는 건 참 슬픈 거지.

우리는 마지막으로 안상수의 가방을 열어보기로 했다. 그의 바바리 코트와 모자와 함께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만한 이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가방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필요한 것들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몇 가지 이야기가 더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서 안상수는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했고,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 찾아볼 수 있다. (안상수는 “듣는 사람들이야 새로 들으니 좋겠지만 하는 나야 같은 이야기 계속 하려니 지겹지.” 라고 손사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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